이 글을 도대체 어떻게 써야 할까, 수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만, 우선 대한민국에서 초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답할 수 있는 문제로 시작할까 합니다. 음악의 아버지는 누구일까요? 그리고 음악의 어머니는 누구일까요?
우리를 그렇게도 괴롭혀 왔던 주입식 교육 덕분인지, 이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답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바흐와 헨델이지요. 그리고 누구나 다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
보셨을 거라 믿습니다. ‘아, 헨델은 어머니인 걸 보니 여자였나 보다.’ 그리고 90년대에 <최불암 시리즈>가 유행했을 때 국민학교를 다녔던 분들은
어쩌면 이런 유머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최불암이 학교에서 음악 시험을 보았다. ‘음악의 아버지는 바흐, 음악의 어머니는 헨델이다. 그렇다면 베토벤은 무엇인가?’ 최불암은 잠시 생각하다 답을 적었다. ‘음악의 처삼촌’>
다소 실없는 시작이긴 했습니다만, 그만큼 클래식 음악에 접근하는 방법은 딱히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클래식 음악이라는 장르가 대체로 유럽의 전통
음악을 지칭하는 것이고, 특히나 그 뼈대를 구성하는 이론이
지금으로부터 300년 정도 전에야 완성된 것을 생각하면, 바흐와 헨델, 베토벤 정도만 알고, 그 베토벤의 ‘빰빰빰 빠암~!’ 하는 곡이 <운명>이라는 것 정도만 알아도 일단 여러분은
클래식 음악의 세계에 한 발짝 들여놓고 있는 겁니다. 심지어 학창시절에 –재학 중인 동문들은 지금도- 머리 깨나 아파하며 외웠던 국사에 비하면
역사도 짧고, 굳이 외우지 않고 그냥 맘에 드는 것만 골라
들어도 상관 없으니, 사실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고급스럽거나 한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연주회 티켓 값도 별 차이 없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래서, 골치 아프게 클래식의 역사라거나 바흐 이전 시대의 마드리갈 이라거나 20세기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성향이라든가 21세기 음악계에서의 비르투오소의 의미라든가 하는 골치 아픈 –그리고 앞으로도 별로 다루지 않을- 이야기들은 접어 두고,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있으되 ‘너무 지루해서
못 듣겠다,’ ‘뭘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시는 분들을 위해 ‘클래식 음악 시작하기’
정도의 이야기를 짧게 해 볼까 합니다.
모두들 아시겠지만, 어느 장르가 됐든 음악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익숙한 멜로디, 익숙한 리듬이 나오면 아무래도 좀더 재미있게
들을 수 있지요. 하지만 처음 클래식 음악을 들었을 때
익숙해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일단 가요와 비슷하게 한 곡에 3~4분 정도 길이인 소품들도 있지만, 소나타, 협주곡, 교향곡 등으로 넘어가면 한 곡에 30~40분 정도는 기본이고–심지어 1시간에 육박하거나 그것을 넘는 곡도 드물지
않고-, 한 악장을 듣는 데만도 20분 넘게 걸리는 곡들도 흔합니다. 이러니 처음부터 열심히 듣다가는 어느
순간엔가 졸고 있을 수밖에요. 그리고 사실, 익숙해지더라도 졸릴 때가 없지 않습니다.
물론 졸면서 들어도 되지만, 조금 더 즐겨보고 싶다면, 저는 두 가지 정도의 방법을 추천합니다. 우선 짧은 곡 위주로 듣는 겁니다. 짧은 곡들 중에도 충분히 좋은 곡이 많고, 아주 인상적이고 익숙해지기 좋은 멜로디로
이루어진 곡들이 많습니다. 이런 곡들은 따로 찾아보기는 쉽지 않지만, 유명한 연주자들이 발매한 앨범 중에 이런
소품들을 연주한 앨범들이 꽤 많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일을 하면서 듣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이어폰을 낄 수 있는 환경이라면, 집중이 필요한 작업일 때–저 같은 경우에는 오랫동안 엑셀을 만져야 할
때-, 회사에서 어렵다면 집안일을 할 때가 좋습니다. 특히 설거지를 할 때 음악을 틀어놓으면, 물소리 사이사이로 들려 오는 음악 소리에
익숙해지면서도 졸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래에 있는 링크들은 듣기에 괜찮은 짧은 소품들과
일 하면서 듣기 좋은 곡들입니다. 한 번 들어보시면서 익숙해지시기를 바라면서, 다음 글에서는 우리 생활에서 흔히 들어볼 수
있는 클래식 음악들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짧은 곡들>
1. 브람스 <FAE 소나타>
‘자유롭지만 고독하게(Frei aber einsam)’라는 멋진 지시어로 유명하고, 격렬한 시작 부분이 한 번 들으면 좀처럼
잊기 힘든 강한 인상을 남기는 곡입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교차되며 치열하게
대립하는 모습은 이후 작곡된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2. 글룩 <멜로디(from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저승까지 가서 아내 에우리디체를 되찾아 왔지만 순간의 실수로 영원히
이별해야 했던 악사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는 정말 유명합니다. 글룩은 이 이야기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라는 오페라로 만들어 무대에 올렸고, 그 중 플룻이 멜로디를 연주하던 <정령들의 춤> 부분은 바이올린을 위한 소품으로 편곡되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기교보다는 이야기의 진정성에 초점을 맞추었던
글룩의 자세가 잘 드러나기도 하는 곡입니다.
3. 바치니 <고블린의 춤>
파가니니에게도 인정받았던 19세기 이탈리아 바이올린의 대가, 안토니오 바치니의 곡입니다. 스스로가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고, 만년에는 많은 제자들을 키워냈던 만큼
바이올린을 위한 곡들도 많이 작곡했는데요,
<고블린의 춤>은 당시 유행하던 흐름에 맞게 초절한 기교를
요구하는 곡입니다. 마치 모닥불 앞에서 춤추는 고블린들이 눈에 보일 것 같은 느낌입니다.
<긴 곡들>
1.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첫 시작은 누구나 들어봤음직 하지만, 뒤로 갈수록 별로 들어본 기억이 없으실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불면증의 좋은 곡’ 등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니까요. 실제로도 불면증 치료를 위해 작곡되었다는
이야기가 남아있을 만큼, 피아노 독주로 고요하고 차분한 느낌을
안겨줍니다. 이 곡은 굉장히 치밀하게 계산된 곡이자 당시
신교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던 바흐의 기쁨이 담겨있다고도 하지만, 이 이야기는
나중에 또 다룰 기회가 있을 것 같으니 조금 뒤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2. 비발디 <사계>
누구나 알 만한 곡 두 번째입니다. 우리는 물론 <봄>의 1악장만 많이 들어 보았지만, 여기저기 광고에서 다른 부분들도 많이 나온
적이 있으니 듣다 보면 ‘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워낙 <사계>라는 제목만으로 알려져 있어서 다들 간과하는
사실인데, 사실 이 곡은 네 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입니다.
3. 베토벤 <교향곡 5번(운명)>
역시 누구나 알 만한 곡입니다. 본문에도 이야기했듯 ‘빰빰빰 빠암~!’하는 두 마디(음악용어로는 ‘동기’라고 합니다.)는 음악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동기입니다. 위에 나온 곡을 아무 것도 안 들어본 분도
이 부분만큼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이 곡은 무수한 고통을 이겨낸
베토벤의 인간 승리가 담겨 있는, 대단히 감동적인 곡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 역시 나중에 따로 다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