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6일 목요일

[뉴스레터 창간호] 동문 인터뷰 - 6기 이연준 동문

사회 각계에 진출한 동문들을 찾아보는 <동문 인터뷰>. 그 첫 순서로는 투자은행의 억대 연봉을 뿌리치고 경제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6기 이연준 동문을 만나보았습니다.
인터뷰 : 6김영두, 편집 : 9조명근


김영두(이하 두) : 안녕하세요. 동기에게 존댓말로 인터뷰를 하려니 조금 어색하네요. 먼저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연준(이하 준) : 동문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이연준이라고 합니다. 19982월에 서현고를 졸업한 6기 동문이고, 지금은 미국 텍사스 주립대(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경제학 박사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 동문 여러분에게 잠시 귀띔해 드리자면, 원래 미국에 있는 친구인데 잠깐 한국에 들어 온 틈을 타서 제가 인터뷰를 따냈습니다. 원래는 만나기 힘든 사람이에요.
: 하하, 마침 한국에도 들어왔고, 영두와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이 인터뷰가 되었네요.
: 졸업한지 벌써 20년 가까이 지났는데요, 혹시 서현고등학교에 대한 기억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 서현고라면그리움이나 뭐 이런 추상적인 느낌보다는 구체적인 사람들이 떠오르는 편이에요. 미국에서 지내는 지금도 거의 매일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카톡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사회 생활 하면서도 스승의 날이면 찾아 뵈었던 장성한 선생님, 또 이외에도 좋은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죠.
: 교련 시간에 붕대 감던 거 생각나네. 요즘 후배님들은 아마 교련이 뭔지도 모르지 않을까?
: 아마 그렇겠지. 또 씨알소리에서 교지 편집을 함께 했던 동아리 친구들과 선후배들도 떠오릅니다. 대학 입시라는 큰 스트레스가 있었지만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 시절을 즐겁게 보낸 기억만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서현고에 굉장히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 생각해 보면 저도 서현고에서의 생활이 참 즐거웠던 것 같네요.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 일단 첫 입시에서는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학원을 다니며 재수를 했습니다.
: 우리 때는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라는 말도 있었으니까, 재수하는 친구들이 워낙 많았죠.
: , 그래도 재수한 보람이 있어서 서울대 경제학부에 99학번으로 입학했어요. 2학년까지 마치고 군대에 갔습니다.
힘들지만 나름의 의미가 있었던 해외파병의 기억
: 기억하기로는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던가요?
: 맞아요. 다들 아시겠지만 미국은 속지주의 국가라서 미국에서 태어난 저는 미국 시민권도 있는 이중국적자였죠.
: 그런데도 군대를 갔군요.

: 사실 미국 시민권을 택하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한국인으로서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당연하고 생각해서 해병대 899기로 자원 입대했습니다.
: 언론에서만 보던 미담이 내 옆에 있었네. 자원 입대해서 간 군대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볼까요?
: 일단 입대한 해에 9〮11 테러가 발생했어요.
: , 그때 진짜 충격이었지.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고
: 맞아. 그때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우리나라도 해외에 파병을 하기 시작했고, 저도 거기에 자원을 했어요.
: 자원의 연속이군요.
: 하하, 듣고 보니 그렇네요.
: 파병은 어디로 가셨나요?
: 아프가니스탄으로 갔어요. 수도인 카불 근처에 있는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근무했습니다.
: 해병대였는데 공군기지로 가셨군요.
: . 거기서 현지 주민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무장교와 의무병들이 있었는데, 그 분들을 경호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 아프가니스탄이 지금도 굉장히 위험한 지역인데 그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겠어요.
: 몸도 몸이지만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어요. 일단 워낙 한국에서 멀기도 하고, 말도 안 통하고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투자은행의 세계에 들어서다

: 제대 후에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 제대한 뒤에 대학을 졸업했고, 2007년에 독일계 투자은행인 도이체방크 홍콩 지점에 입사해서 Credit Structuring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일했습니다. 말하자면 신용 파생 상품을 설계하는 일이었죠.
: 이름만 들어도 상당히 복잡한 업무였을 것 같네요.
: 그렇죠. 그런데,
: 그런데?
: 입사하고 바로 다음 해에 리만 브라더스 금융위기가 터진 거예요.
: , 그렇겠네요. 금융위기가 2008년 말이었으니
: 그렇죠. 딱 그때예요. 그때 제가 있었던 부서 전원이 해고를 당했습니다.
: 입사한지 1년 만에요?
: , 투자은행에 입사했으니 ‘이제 큰 돈을 굴려 보겠구나’ 하는 기대로 부풀어 있었는데 돈 냄새만 맡고 회사를 떠나게 된 거죠. 참 씁쓸한 경험이었어요.
: 신입사원까지 해고하다니 참 냉정하네요.
: 그렇죠? 회사를 나오고 나서 4개월 동안 구직 생활을 하다가, 2009년 초에 미국계 투자은행인 모간 스탠리 서울 지점에 입사했습니다.
: 그래도 4개월 만에 취직이 됐다니 다행이네요.
: 하하, 다행이죠.
: 모간 스탠리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 모간 스탠리에서는 Fixed Income Division에서 일했는데, 국내 금융기관에게 채권과 이자율 파생 상품을 파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여기서는 5년 넘게 일했고, 2014년 여름에 퇴사했어요. 그 뒤에 미국 텍사스 주로 유학을 가서 경제학 박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냉정한 투자은행의 세계

: 박사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뒤로 미룰까요? 아무래도 아직 취업하지 않은 후배님들은 투자은행에 대한 이야기를 궁금해할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볼게요. 투자은행에서의 삶은 어떠셨나요?
: 투자은행은 금융업계에서 최전선에 위치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대학 때 아무리 관련 업무에 대한 준비를 열심히 하더라도,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영역이 굉장히 많고, 입사하고 1~2년 정도는 굉장히 바쁘게 일을 배워야 하죠. 저도 이른 아침에 출근해서 밤 늦게까지 야근하는 날이 많았고, 일만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양의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 굉장히 바쁜 삶인 것 같네요.
: , 정말 바빴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채권과 파생상품 세일즈 담당이었다고 이야기 했는데, 보통 이런 식이었어요. 아침에 출근하면 지난 밤 유럽과 미국 금융 시장 동향을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아시아 금융시장이 열리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반까지는 금융 거래에 집중했습니다. 장이 마감되면 그날 거래를 정리하고, 늦은 오후부터는 클라이언트들의 사무실을 방문해서 금융 시장 동향과 새로운 금융 상품에 대한 미팅을 했죠. 그러다 보면 저녁 시간이 되니 클라이언트와 저녁 식사를 함께 하는 날이 많았고요. 식사 약속이 없는 날이라도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그때 장이 열려 있는 런던이나 뉴욕 금융 시장에서 금융 거래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 시차가 있으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굉장히 바쁘게 일할 수밖에 없었겠네요.
: 정말 바빴죠.
: 그렇지만 역시 장점이 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인 것 같아요. 경험자로서 투자은행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 일단 어린 나이에도 큰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아요. 일반적인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팀 단위로 움직이고, 임원이 되지 않는 이상 권한을 많이 주지 않는 편이잖아요. 그런데 투자은행은 갓 입사해서 기초 교육만 받은 20대의 젊은 직원에게도 충분한 권한이 있어서, 각자의 재량으로 거래를 하고 회사에 돈을 벌어다 줍니다. 회사에 큰 돈을 벌어다 주는 만큼 임금 또한 최고 수준을 자랑하죠.
: 말로만 듣던 ‘억대 연봉’이군요. 그럼에도 5년 만에 퇴사를 결정한 것을 보면 단점도 분명히 있을 것 같네요.
: 아무래도 수명이 짧다는 것이 큰 불안 요소였죠. 젊은 나이에 큰 권한과 책임을 갖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이지만, 선배들을 보면 40중후반, 기껏해야 50대 초반에 업계를 떠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떠나가는 선배님들을 보면서 ‘내가 할 줄 아는 일은 이것 밖에 없는데, 40대에 그만두게 되면 나는 뭘 해야 하지?’라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죠. 자연스럽게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나이 들 때까지 오랫동안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그래서 퇴사를 결정하고 박사 과정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 30대 중반에 커리어를 변경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한 것 같습니다. 박사 과정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를 해 볼까요?
: 제가 이수하고 있는 과정은 5년짜리 프로그램인데, 저는 지금 3년까지 마친 상태예요. 투자은행에서 겪었던 채권 시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박사 학위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지식의 숲을 거닐고 싶다면
: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을 거쳐 박사과정까지, 굉장히 오랫동안 공부를 하고 있는데, 혹시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 후배님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 공부한다는 것은 결국 지식을 쌓는 일인데, 넓고 깊은 지식을 가질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사실 그러기는 어렵죠. 그래서 저는 넓고 얕은 지식보다는 좁고 깊은 지식을 택했습니다. 투자은행에서 일하다 보니 지식에 대한 갈증이 계속 느껴지더군요. 홍콩, 런던, 뉴욕을 포함하는 세계 금융시장은 굉장히 역동적이고, 정말 스마트한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실력을 뽐내면서 큰 돈을 벌어가는 매력적인 시장이에요. 이 흥미로운 시장과 나날이 발전하는 투자 상품들을 보면서 온전하게 내 것으로 이해하고 싶었는데, 당장의 생활이 너무 바쁘다 보니 그럴 시간이 없었습니다.
: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을 일을 했으니 그럴 만하네요.
: , 그리고 투자은행의 주목적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버는 것이니까요. 지난 달에 이자율 시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보다, 당장 다음 달에 이자율 시장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고, 그에 맞춰서 내가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죠.
: 논문을 쓰고 있는 지금은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나요?
: 하하, 노력하는 중이죠. 미국 대학의 경우에는 박사 과정에 지원하면 ‘Statement of Purpose’라는 걸 제출하게 되어 있어요. 우리 말로 하면 ‘학업 계획서’ 정도 되는데, 내가 왜 박사 학위를 받으려고 하는지, 어떤 분야를 연구하고 싶은지에 대해 쓰는 겁니다. 저는 이 학업계획서를 제출하면서 마지막 부분에 ‘I wish to stroll in a dense forest of knowledge.’라고 적었어요.
: 무슨 뜻인가요?
: 울창한 지식의 숲을 거닐고 싶다는 말이죠. 경제학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필요한 소양을 갖추고, 나만의 이론으로 논문을 작성해서 동료 학자들에게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피드백을 받아서 제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저에게는 그것이 큰 행복입니다. 지식이라는 나무가 빽빽하게 서 있는 숲을 한가로이 거니는 것. 이런 일이 가슴 설레고 즐거운 후배님이라면, 박사 과정까지 공부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바쁜 일상을 달래준 취미생활

: 이제 좀 가벼운 이야기를 해 볼까요? 등산이 취미라고 들었는데.
: 좋아하죠. 원래는 한라산, 지리산 같은 우리나라의 명산들을 찾아 취미를 붙이다가, 해외의 이름난 산들에도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네팔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하면서 설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감상했죠.
: 말로만 듣던 히말라야에 다녀왔군요. 다른 나라에서도 등산을 했나요?
: 일본에서는 후지산에 올라갔는데 화산재 때문에 미끄러워서 등산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말레이시아 키나발루 산에서는
: , 코타 키나발루가 있는 동네군요.
: 네 맞아요. 키나발루 산에는 친구들 넷이 함께 올라갔는데, 한 명도 낙오되지 않고 모두 등정에 성공해서 기쁨이 두 배였습니다. 아프리카에 있는 킬리만자로 산에서는 고산병에 걸려서 정말 고생했어요. 하도 고생을 해서 ‘내가 전문산악인도 아닌데 다시는 고산에는 오르지 말아야겠다.’ 다짐까지 했는데, 이게 중독성이 있는지 다시 산을 찾게 되더라고요.
: 산이 거기 있어서 간다, 이런 말이 떠오르네요.
: 하하, 그만큼 즐거운 것 같아요. 뉴질랜드에서는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지 근처(밀포드 사운드)에서 아내와 함께 트레킹을 했는데, 비가 많이 와서 허리까지 차는 강을 백팩을 짊어지고 건너가는 경험도 해 봤습니다. 요즘은 미국에 있다 보니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그랜드캐년 국립공원 같은 미국 서부의 국립공원들을 집중 공략하고 있어요. 정말 압도적인 경관을 자랑합니다.
: 아시아, 미국, 오세아니아, 아프리카까지 안 다녀본 곳이 없군요.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어디였나요?
: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여기는 절친한 서현고 후배와 함께 갔는데, 67일 중에 4일은 내내 올라가고 3일은 내내 내려가는 일정이었어요. 현대 문명과는 거리가 있는 그 광활한 지역이 너무나 매력적이었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산을 내 눈으로 본 순간, 분명 파란 숲으로 둘러싸인 흙길을 걷고 있었는데 어느 샌가 눈 덮인 산 속을 걷고 있던 내 모습, 인간의 흔적을 찾기 어려운 황량한 자연 그대로인 경관들, 그곳에서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가파른 설산들이 병풍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을 때의 느낌정말 잊히지가 않습니다. 한 번 방문하려면 시간도 돈도 많이 투자해야 하고, 체력적으로도 쉽지 않은 곳이지만 언제든 다시 가 보고 싶은 곳이에요.

앞으로의 꿈, 그리고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두 가지 질문이 남았는데요, 먼저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해 주세요.
: 우선 단기적으로는 좋은 박사 학위 논문을 써서 대학 교수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교수가 된 뒤에는 이론과 현실 간의 균형 감각을 갖춘 좋은 학자가 되고 싶어요. 대부분의 박사 과정 학생들은 학부 졸업 후 바로 석〮박사 과정에 지원합니다. 하지만 저는 박사 과정 진학 전에 7년 정도 실무 경험을 쌓았는데, 업계에서 쌓은 이 경험이 저를 다른 학자들과 차별화 할 수 있는 좋은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 직업 이외에도 다른 꿈이 있을 것 같아요.
: 개인적으로는2세를 낳아서 아내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중요한 목표이고 꿈입니다. 또 시간 날 때마다 부지런히 하이킹을 하면서 미국에 있는 모든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것도 제 버킷 리스트 상위권에 있는 일입니다.
: 등산이 진짜 중독성이 강한가 보군요. 마지막으로 서현고 후배님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동문회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을 때, ‘왜 나한테 인터뷰를 요청했을까.’ 생각을 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다른 동문들에 비해 제가 다채로운 경험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후배님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면 무수히 많은 기회가 생길 겁니다. 판단을 해야 하고,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고 망설여진다면, 저는 가능하면 해 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불법이 아닌 이상, 그리고 사회 통념 상 용인되지 않는 일이 아니라면, 직접 경험해 보세요. 여러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의미 있는 경험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막상 겪어보면 실망하게 될 수도 있지만, 도전도 안 해보고 접는 것보다는 한 번 해 보고라도 그만 두는 것이 훨씬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후배님들의 미래에 즐겁고 흥미진진한 모험이 많이 펼쳐지길 바랍니다.